우리사회에서 기업이 금융회사들로부터 자금이나 신용을 지원받으려면 대표이사, 주요임원, 대주주, 때로는 그 가족까지 연대보증을 해야 하는 관행이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이와 같은 연대보증제도로 인해 기업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손쉽게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이익이 있지만, 여려 부작용이 커서 이런 관행을 시급히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결국 금융위원회의 행정지도에 따라 올해 7. 1.을 기점으로 금융기관이 자금융통의 주체인 채무자가 아닌 자들을 연대보증인으로 입보하게 하던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실제로 연대보증제도의 폐지에까지 이른 것은 아니고, 회사의 대주주, 대표이사 등 회사경영에 실질적 영향력을 미치는 이들을 중심으로 상당수의 사람들이 연대보증인으로 여전히 금융기관을 위해 입보하고 있지만, 이같은 연대보증인 축소조치는 전체 금융시스템이나 개별 금융회사 차원에서 나름 파급력이 있고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 사건이기에 그 의미를 돌아보고자 한다.
우선 기존 연대보증인제도(관행)의 무엇이 문제인가? 이는 기본적으로 유한채임회사라고 하는 주식회사제도의 기본정신에 반하는 관행이다. 근대법은 회사에 독립적이 법인격을 부여하여 이를 소유, 경영하는 개인들과 분리된 법적 주체로 인정하였다. 이로써 개인들은 사업실패에 뒤따르는 무한책임과 파산의 위험으로부터 분리되었고 이로 인해 인간의 창의적 경제활동의 기회와 자유가 획기적으로 증대되었는데, 연대보증관행은 기업과 분리된 개인들을 다시 하나로 묶어 버리는 우회수단이 됨으로써 주식회사의 유한책임원칙을 유명무실하게 해왔다.
연대보증제도는 또한 우리사회에 다음과 같이 도적적 해이와 역선택과 같은 부정적 효과들을 야기해 왔다. 연대보증제도가 관행처럼 이용된 결과 회사의 대표이사, 대주주는 그 회사를 자신의 개인소유물로 여기고 회사의 재산과 인력을 개인적인 용도로 이용하는 도덕적 해이 현상이 쉽게 벌어진다. 사업에 실패할 경우 연대보증을 선 대표이사나 대주주는 자신은 물론 심지어 가족까지 무한책임을 지게 되므로 회사재산을 빼돌리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게, 실제 회사재산과 인력을 사적으로 유용하게 외부로 빼돌리면서도 별로 도덕적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또 이런 문제로 인해 사업실패시 회사재산을 빼돌린 사람은 나름 재기를 도모할 여지가 남는데, 법과 원칙을 지켜 경영한 사람은 자신은 물론 그 가족까지 극빈층으로 전략하고 신용불량자란 딱지까지 붙어 재기의 기회마저 없는 비극적 상황에 내몰리게 되니 이것이야 말로 역선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중소기업의 창업은 실패가능성을 안고 출발하는 것인데 사업실패가 자신은 물론 가족의 전재산을 모두 걸어야 하는 것이라면 기업가의 창업의욕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고, 기업이 성장하면서 기술력이나 경영능력을 갖춘 외부 인재를 영입해야 할 경우가 많은데 주요임원들에게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관행은 중소기업이 외부 인재를 영입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로 작용한다.(이상 연대보증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정대영, 한국경제의 미필적 고의, 2011, 한울을 주로 참조하여 서술하였다.)
금융의 기본역할은 자금(신용)이 필요한 사람들에게서 자금을 모아 자금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자금(신용)을 빌려 주는 것이다. 이처럼 금융이 자본을 축적한 이들의 자금을 모아 사업과정이나 생활 속에서 일시적으로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흘려보내 주는 역할을 잘 수행하면 경제가 순조롭게 돌아가면서 생산과 고용이 창출된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자본이 부족한 후발주자나 소외계층도 의욕과 능력이 있으면 사업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함으로써 사회통합기능도 수행한다. 금융은 이처럼 사회에서 자금의 융통을 매개함으로써 신용을 창조하고 공급하게 되는데, 금융이 발전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바로 금융기관의 "심사능력"과 "위험관리능력"이다. 자금을 필요로 하여 금융기관을 찾는 적자주체들은 당연히 현재 자금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금융기관이 이들을 상대로 인적·물적 담보를 모두 받고서야 자금을 제공하고자 한다면, 금융기관은 사회에서 자금(신용)의 총량을 증가시키고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자금(신용) 총량을 그대로 흘려보내면서 단지 그 길목을 지키고 서서 '통행세'를 뜯고 있는 자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금융기관이 자금이 부족한 사람들을 상대로 채무불이행에 따른 대손(loan loss)의 가능성을 안고 금융을 제공하면서 새롭게 신용을 창조하려는 역할을 하려면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하고 과연 누가 진실로 사업을 수행할 의욕과 능력을 가지고 사업을 수행하고 약속대로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이같은 심사능력과 위험관리능력의 제고는 현대 금응기관 경쟁력의 핵심이며 금융시스템 선진화를 위해서는 회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연대보증제도의 축소 내지 폐지는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당장에는 영업규모 내지 이익 축소로 이어질 수 있겠고, 연대보증인을 담보로 제공하고서라도 자금을 제공받고자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그와 같은 기회가 상실되는 부작용되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기관들은 연대보증제도가 위에서 본 것처럼 막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고 이를 이용해 손쉽게 영업하는 관행에 집착해서는 금융기관의 존재 근거 자체가 의심받게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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